이상한데. 선배님이 불러준 주소 맞아? 모텔인데? 그쵸? 이상하죠? 모텔이 나오네요. 네비를 찍고 약속 장소로 모이던 선후배 간에 난리가 난다. 모텔 앞에 서 있으라고? 이 벌건 대낮부터? 하하 약속시간은 11시 30분이지만 준비성 좋은 우리 정신여고 동문은 그 30분 전부터 이미 모여들며 전화통이 불난다. 주소 맞아? 모텔이야 모텔.

그렇다. 선배님이 불러준 주소는 모텔이었다. 모텔을 개조해서 만든 아트밸리 사무실이었다. 55회 육명희 선배님의 작업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흥엔 모텔촌이라 할 만큼 모텔이 많다. 선배님은 그 모텔들을 하나씩 사서 미술관, 도서관, 조각 전시관 등으로 만들어가고 계셨다.

바로 이런 식이다. 모텔이었던 이 건물을 사서 쾅쾅 다 때려 부숴 벽을 뻥 뚫어놓고 거대한 조각 작품을 전시한다. 밖에서도 훤히 보이는 멋진 조각 전시관으로 재탄생된다. 전시된 조각들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돈 많이 벌린다는 짭짤한 수익의 모텔을 조각 전시관으로 만들다니. 귀족의 의무랄까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노블레스 오브리제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무명의 어려운 작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전시공간을 마련해주고.

무려 12미터 높이의 이런 작품을 도대체 어디서 만들 수 있을까? 그걸 해결해주신 분이 바로 선배님이시다. 물론 그 뒤에는 이 모든 작가들을 후원하고 지원하며 현대조각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애쓰시는 우리 선배님의 서방님 크라운해태그룹 윤영달 회장님이 계시다.

아무리 커다란 작품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거대한 작업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중기가 있고 바닥에 바퀴가 달려 어마어마하게 큰 작품들을 드드드드 바퀴채로 이동시킬 수 있다. 넓은 그 공간에 들어가 본다. 우리 스스로가 작가가 된 양.

거대한 작업실을 우리 발로 직접 밟아 본다. 쿵쿵 쿵쿵 아하 이 밑이 바퀴로 되어 있구나. 저기 도르래로 이동이 쉽겠네. 철물로 된 비행기 위의 조각 너무 예쁘다. 우아 저기 길고 긴 철물 구조물을 봐. 한창 작업 중인가 봐. 거대한 그곳의 모든 것들에 감탄사가 쏟아진다. 조각가들에겐 얼마나 유용한 작업실일까. 레지던스 작가들까지 후원하고 있는 선배님. 이미 유명해진 작가보다는 무명의 어려운 작가들을 돕고 계신데 십여 년 지원에 교수도 나오고 유명한 작가도 나와 보람을 느끼신단다.

아트밸리 사무실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던 선배님. 일억 이라는 거금을 거침없이 동문회에 기부한 55회 대선배님이라기에 꽤 연세가 많으신 분으로 알았다. 그런데 젊은 차림의 언니 같은 분이 손수 이름표를 우리들 목에 걸어주시며 반갑게 맞이하니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란다. 아니, 육명희 선배님이세요? 와우 어쩜 이렇게 젊으세요? 표고농사 실패작을 보여주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선배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하셨다. 우리를 위한 프로그램이 적혀있는 안내장이다. 드라이브 스루 조각전 투어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국악 공연을 보고 기념촬영 및 담소를 하고. 팸플릿에 적힌 순서대로 그곳 직원들에 의해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된다.

회의실엔 크라운해태 과자가 한가득. 그래도 크라운 하면 크라운 산도지요. 난 땅콩샌드가 좋아. 난 에이스~ 입맛대로 과자를 고르고 제공되는 뜨거운 차를 마시며 오늘의 일정을 자상하게 설명 듣는다. 장흥 약 100만 평의 땅에 조성된 아트밸리. 자연 휴양림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이 멋진 가을날에 그냥 차만 타고 가기엔 좀 섭섭하죠? 걸읍시다. 낙엽을 밟아요. 누군가 제안했고 좋아요 좋아 모두 차에서 내린다. 낙엽을 밟으며 가을 숲길을 걷는다. 삼삼오오 짝지어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소곤소곤 지난 추억을 이야기한다.

오십여 년 전 함께 정신여고를 다닌 친구들과 자박자박 낙엽을 밟으며 옛이야기를 하는 선배님들. 명희가 너무 예뻐서 이대 2학년 때 그대로 남편에게 낚여 결혼했지. 명희 정말 예뻤거든.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 옛날 러브스토리에 바삭바삭 낙엽 가득한 가을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는다.

처음 만나는데도 오로지 정신여고를 나왔다는 것만으로 선배 후배 되어 금방 친해진다. 모두가 그게 참 신기하다. 정신 후배들을 처음 만났다는 53회 이영주 선배님도 이렇게 후배들이 친밀하게 다가올지 몰랐다며 내년 봄엔 당신의 농장에 우리 모두를 초대하겠다 하신다. 의사이면서 주부 역할도 거의 완벽하신 선배님 생활모습에 우리는 감동한다.

여러분~ 하면 네~ 하세요. 네~ 네~ 네~ 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이 찍힌다. 이젠 김치 멸치 대가리 아니고 여러분~ 하면 네~ 하는 거구나. 하하 그런데 우리 육명희 선배님 자꾸 사진 찍는 직원에게 여러분 네~ 그러거 하지 마라 하신다. 그런 걸 안 하고부터 눈 감은 분들이 대거 등장하여 단체사진 골라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단체사진에선 여러분~ 네~ 또는 김치 멸치 대가리~ 그 어떤 집중의 말이 반드시 필요하다.

달콤하고도 바삭한 과자 이름을 딴 쿠크다스 농장은 선배님께서 직접 농사지으신다. 손가락에 관절염이 올 정도로 열심히 재배한 선배님의 농작물 성과는 대단하다. 고추 백 근을 이미 수확해 놓으셨고 지금은 배추랑 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직접 심으신 올해의 배추와 무. 통통하니 포실포실 아주 실한 배추와 무가 쫘악 이 열 종대로 서 있다. 농부님~ 포즈 좀 잡아주세요~ 그럴까? 배추를 뽑을 까 무를 뽑을까? 배추는 너무 커서 쉽게 뽑히지 않겠어요. 무를 뽑으세요~ 여고 동창이라는 것 하나로 친숙해져 선배님~ 이쪽으로요~ 저쪽으로요~ 맘껏 지령을 내린다. 쑥 뽑힌 무를 들고 이리저리 지령에 따르는 선배님을 보며 깔깔 푸하하하 우리는 웃음을 쏟아낸다. 가을 장흥 쿠크다스 농장에 웃음이 가득하다. 우리는 정신여고 선후배 언니 동생이어라~

차 안에서 감상하는 드라이브 스루 견생 조각 작품전. 들어가는 입구에 바람에 휘날리듯 거대한 조각. 지금은 시뻘건 대낮이라 그냥 시커먼 쇳덩이로 보이지만 요 거이 깜깜한 밤이 되면 번쩍번쩍 불이 들어와 아주 멋진 조각으로 살아난단다. 견생 조각전이라… 견생? 모지?

見 볼 견

生 날 생

조각을 보니 생명이 솟아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2017년 세브란스 병원 전시장에서의 일이다. 그래서 붙여지기 시작한 견생 조각전. 보면 생명이 생긴다는 뜻이다. 하하 우리는 생명이 퐁퐁 솟아나도록 거대한 조각들을 보러 드라이브 스루 견생 조각 작품전으로 떠난다.

자동차 안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조각들을 전시해놓은 게 드리이브 스루 조각전이다. 자동차 안에서 편하고 안락하게 조각들을 둘러보는 힐링의 시간이며 나만의 관람이다. 현대 미술의 색다른 관람문화라 할 수 있는데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실행된 것이다.

차를 타고 가다 곳곳에 내려서 또 작은 전시관을 구경하게 되었으니 그냥 철문이 아니라 예술작품처럼 꼬불탕 꼬불탕 너무 재밌는 철문을 통과하니 기다란 동굴 같은 암굴 전시장이 나타난다.

너 이곳 잘 지키고 있어라~ 넵! 하하 또 다른 특별 전시장 입구의 해태가 대답하는 듯한 표정이다. 금굴 전시장이다. 곁에서 우리도 덧붙인다. 잘 지켜라~

바로 얼마 전까지 불상들 전시가 있었다는 금굴 전시장. 은은한 빛의 조명과 함께 전시관이 특이하다. 그 어떤 전시물이고 분위기를 멋지게 연출해줄 것 같다. 빛의 전시회 요즘 인기인데 그런 거 하면 되겠네요. 깜깜한데 빛의 번쩍임. 괜찮겠는데요. 저마다 전시회의 기획자가 되어 열심히 이 특별한 공간을 꾸며본다.

장사의 꿈이라는 김원근 작가의 특수시멘트 채색 조각이다. 실물 같은 거대한 조각들이 차례로 진열되어있고 드드드드 전기차를 타고 천천히 하나하나 감상한다. 가을 하늘은 드높고 우리의 관람 열기도 높아만 간다. 우아 너무 멋져. 어쩜.

조각들 옆 빈 땅엔 어김없이 아로니아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언제고 아로니아가 먹고 싶으면 와요~ 이 아로니아를 밥에 넣어 먹으니 참 좋더라고요. 육명희 선배님의 초대에 우리는 아로니아 열릴 즈음 반드시 와서 실컷 따먹겠다고 약속하며 즐거워한다.

언덕 위에 보이는 하이에나 두 마리. 여기가 끝입니다. 더 이상 가면 안된다고 말하는 듯 언덕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무리를 위해 단체사진을 찍는다.

식사시간에 무려 한 시간이나 늦는다. 식당에 미안하다. 그만큼 우린 학구적이었다. 부장님이 놀란다. 얼마나 들 학구적이신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뒤로 뒤로 미루어지는 식사시간에 준비하는 분들은 얼마나 짜증 났을까. 이 곳 장흥의 새로운 맛 일명 봉황이라고 닭 볏과 닭발이 감쪽같이 숨겨져 있는 음식. 그런 거 전혀 못 먹는 나도 자연스럽게 다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달걀 푸딩에 쏙 숨겨져 있는 닭 볏이며 봉황 샐러드 꼬치구이 속의 닭발 조각이며 삼합 파전 누룽지탕 등에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는 닭발의 많은 콜라겐을 다 먹고 나니 입안이 끈적끈적할 지경이다. 특별한 와인과 함께 봉황이라는 콜라겐 투성이 귀한 식사를 하며 선배 후배 어우러져 깔깔 푸하하하 정신여고 소녀 시절로 돌아간다.

이 의자 너무 재밌다. 앉아봐 들. 하시더니 덜컥 요상한 의자에 앉아서는 뱅글뱅글 넘어질 듯 위태위태 돌아가는 선배님. 푸하하하 모두 모두 그 희한한 의자에 앉아 어린애들처럼 깔깔대며 뱅글뱅글 어지럽게 돌아간다. 국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많은 우리나라 전통 악기들이 진열되어있고 맘대로 만져볼 수 있다. 뱅글뱅글 의자를 돌리고 딩딩 댕댕 옛날 우리나라 전통악기를 두들겨보고 그리고 음악실로 가 사물놀이 등 국악을 관람한다.

동락 연희단의 사물놀이. 둥둥 두두둥 꽹과리 징 장구 북을 두둘 기며 내는 소리.  다다다 다다다 다다 작게 시작해 점점 커지며 몰아치는 감동. 연주자 모두가 신들린 듯 둥둥 둥둥 자기 악기를 두들겨댄다. 둥둥둥 둥 악기 두들기기에 몰입된 모습이 기가 막히다. 리듬 따라온 몸이 빨려든 듯 절로 움직이는 듯한 신들린 듯한 저 두들기는 모습. 아, 너무 멋지다. 나도 함께 그 쿵쿵 쿵쿵 둥둥둥 둥 흔들림에 혼을 빼가는 듯한 두둥둥 둥 소리에 푹 빠져든다. 온 가슴을 휘젓고 나가는 이 통쾌함 후련함 둥둥둥 둥 아 멋있다. 속이 빵! 뚫려버린다. 둥둥둥둥두둥둥둥

우아 서방님 너무 멋지세요~ 키도 크시고 잘 생기시구 이대 포기하고 당장 결혼할 만하시네요. 하하 우리들 감탄에 호탕하게 웃으시는 크라운해태그룹 윤영달 회장님. 우리도 놀라고 선배님도 놀라고 직원들도 놀란 깜짝 방문이시다. 사랑하는 아내의 여고 동문들을 환영하러 직접 와주셨다. 국악 등 우리 문화를 지원하고 세계 속에 알리는데 거침이 없으신 분이시다.

모든 것 끝나고 크라운해태 커다란 과자 상자 한 보따리씩과 중국에서 공부한 육명희 선배님께서 번역한 지센린의 인생이란 책을 선물 받는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선배님과 회장님께서 손 흔들며 배웅해주신다. 융숭한 대접에 우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그곳을 떠난다.

아트밸리에서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모든 게 끝일까? 아니다. 유미라 회장님의 친구가 운영하는 바로 근처의 커피 볶는 집 카페. 거기서 우리는 기막힌 원두커피 맛을 본다. 카푸치노 카페라테를 시킨 분들 모두가 다시 원두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우아 맛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53회 이영주 선배님께서는 맛있는 옥수수를 우리 후배들 먹이겠다고 가져오셔서 끌러놓는다. 너무 맛있어 어디서 사나요 질문들이 줄을 잇고 깔깔 푸하하하 즐거운 이야기가 봇물을 이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