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일 화요일 네 번째 연습>

매주 울산에서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한번 서울에 오면 온갖 일들을 두루두루 보기 때문에 그렇게 길에 돈을 뿌리는 듯한 마음이 많이 들지는 않았는데 매주 가다 보니 이번에는 오로지 노래선교단 그 두 시간의 연습만을 위해 가자니 십만 원 넘는 차비가 아깝기도 하고 너무 먼 데서 꾸역꾸역 오는 내가 조금 주책 같은 마음도 들고 그리고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내가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라 ‘성실’을 빼면 비빌 구석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결석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여고 때도 노래는 못하면서도 그냥 이 노래선교단이 좋아 무조건 참여, 알토 한쪽 구석에 콕 박혀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낸 나이기에 더욱 그렇다. ‘성실’로 버티는 나다. 하하

아, 안타깝게도 이번 행사를 총 주관하던 4기 박란순 선배님께서 전철 계단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해 오늘 부득이 못 나온다는 소식을 5기 유미라 선배님이 전한다. 열심히 행사를 주관하시더니 갑자기 사고가 난 것이다. 부디 빨리 회복하시기를 모두 기원한다. 내 바로 옆자리에서 알토 하랴 전체 일 돌보랴 바쁘시던 선배님, 어서 나으세요 빈자리의 선배님이 그립습니다.

시작에 앞서 정신여고 교장. 정신여중 다닐 때 등나무 아래 선배님들을 추억한다며 격려의 인사말을 하여 큰 박수를 받는다. 17기부터 그 이후를 맡아 애쓰고 있는 후배들이 함께 인사한다. 얼마나 예쁘고 젊은 후배들이 많을까. 15일 모두 함께 만나게 되는 바로 그 날이 두근두근 큰 기대로 기다려진다. 선배 후배 50년 세월의 그들이 모두 함께 하는 순간이라니. 아, 정말 대단하지 아니한가.

흘러가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다. 언제나 바쁘게 휙휙 신관 꼭대기 그 음악실을 뛰어다니던 최훈차 선생님. 그 활기 넘치던 의욕 충만 지휘자님께서 80대 할아버지가 되어 의자에 앉아계시다. 하하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갈래 머리 소녀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나이 든 아줌마 되어 할아버지 선생님 앞에 앉아있다. 그래도 선생님의 지휘 모습은 그 옛날 그대로고 우리 역시 마음은 여고시절 그대로 인지라 툭하면 터져 나오는 깔깔 푸하하하 즐거운 웃음을 어쩔 수 없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자 반주.”  무심코 반주 시작하는 순배 언니. 그러나  “반주 저렇게 크게 하면 안 돼.” 선생님 지적에 하하 푸하하하 다시 아주 작고 부드럽게. 그 어떤 지적을 받아도 반주자고 우리고 빵! 푸하하하 웃음부터 터지는 건 왜일까. 선생님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일 게다. 우린 그렇게 선생님께 야단을 맞으면서도 마구 웃으면서 노래를 한다.

기왕 이런 걸 쓰기로 했다면 난 좀 용감해져야 한다. 할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 망설이다 벌떡 일어났건만 아, 얼마나 쑥스러운지. 내 나름으로 파트 연습을 함께 하니까 기회는 요때닷 싶어 다른 파트 연습할 때 그 연습하는 모습을 찍으면 되겠다 싶어 일어났으나 집중하여 연습하는 그 순간을 방해하는 것도 같고 아, “이 곳을 보세요~” 웃으며 부탁하는 나 자신이 왜 이러나 싶고, 아. 아무래도 잘못 일어난 것 같다. 그래도 이야기를 적으려면 이 분위기를 나타내려면 모두 열심히 노래하는 그 장면을 찍어야 할 텐데. 그냥 막 찍는 것은 절대 예쁘게 나오지 않고 ‘여기를 보세요~ ‘해야 하는데 점점 사진 찍기 싫어지는 나이에 자꾸 카메라를 들이대면 좋아할까. 아, 난 괜히 일어났어. 이래서는 안 돼. 선생님도 깜짝 놀라신 듯싶고. 아, 그냥 노래에만 집중할 걸. 별별 복잡한 생각이 휘몰아치며 정신이 없다.

오호호홍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조금만 더. 아, 조금만 더. 한 줄 한 줄 찍으면서 ‘나 지금 모하는 거야. 왜 이래.’ 자책이 심하다. 아, 조금만 더. 예쁜 후배들 다행히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그냥 막 미안하다. 에구구구.

‘자, 한 줄 만, 한 줄만 더. 그래. 거의 다 왔어.’ 선배님 후배님 모두 모여 노래하는 그 현장을 잡고 싶어 조금만 조금만 더 씩씩하게. 사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매 순간 그 노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오가며 피로가 확 몰려온다.

미국에서 온 나의 여고시절 단짝과 다시 바로 옆에서 노래 부른다는 것이 이 모든 피로를 풀어주는 감격의 순간이기도 하다. 45년 전 항상 나의 오른쪽 끝에 서 있던 키 큰 순기. 이렇게 다시 몇십 년 만에 만나 곁에서 노래를 부르니 그 감회는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나뿐이랴. 모든 선배님들 후배님들이 각자의 삶을 살다 잠깐이나마 이런 감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 바로 그때 그 선생님 밑에서 말이다. 아 우아아 아

솔로를 기막히게 부르는 선배님, 죄송함에 문득 카메라를 들이밀 때는 누군지도 모르고 팡팡 그저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찍었다. 하하 그런데 나중에 연합으로 부르는 곡 처음에 솔로로 리드하시는데 와우 그 가녀린 몸 어디서 그런 풍성한 목소리가 나올까. 너무 멋지다.

죄송합니다. 죄송. 악보 익히느라 정신없는 멤버들에게 느닷없이 카메라 세례라니. 나도 참참참! 그래도 이미 뺀 칼을 어찌하랴.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기록을 남기랴. 부끄러우면서도 나는 찰칵 용감하게 촬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메조 파트까지 모두 찍어야 하는데 아, 그러기엔 난 너무 부끄럽다. 그만. 그래 그만. 마침 알토 연습이 시작된다. 우리 파트를 안 하고 사진 찍는다고 돌아다닌다? 그건 선생님께서 절대 허락 않으실 일. 재빨리 알토 내 자리로 가 앉는다.

“아이고 촌시러. 그렇게 크게 하면 어떡해.” 하하 선생님 특유의 지적으로 우리는 깔깔 푸하하하 쏟아지는 웃음을 어쩌지 못한다. “네. 선생님~”  지휘자를 보며 집중하여 모두 한 목소리로. 넵. “노래선교단은 그러지 않았어. 자, 나를 봐. 작게. 그렇지 그렇지.” 아, 선생님 따라 우리는 40여 년 전 여고시절 음악실로 돌아간다.

음악을 쓰레기통 비우듯이 하면 안 돼. 정성껏 온 정성을 다해서. 나 할 때는 울리는 자음. 은 나~ 백이십 명 모두가 일제히 은 나~로 나와야 해. 은 나~ 우리 모두 정성껏 부르는데 ‘틀려!” 그래서 우리는 또 빵. 나는 지금 이렇게 살짝 들어가는데 여러분은 푸~ 하면 안되지. 똑같이 들어가야지. 그건 반주자도 마찬가지야. 네네 쉬었다가 아주 조용히 정성껏 발음한다. 조심조심 선생님과 호흡을 함께~

악보가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정신 노래선교단 아닌가. 초견에서 이미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악보를 잘 읽어내던 우리. 집중 집중 또 집중이다.

“합창 음악은 사람 목소리이기 때문에 청중에게 아주 멋지게 다가갈 수 있어. 최고 수준의 합창이란 내가 하면서 느끼는 거야.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거지. 여러분이 노래선교단 시절에 많이 하던 것. 일단 가사가 맘에 들어왔을 때 표현할 수 있는 거야. 그 느낌이 안 오면 그냥 입으로만 부르는 거야. 그건 목만 아프지. 맘은 아무렇지도 않고. 노래할 때 가사가 아주 중요해. 우선 자기 맘에 와 닿아야 해. 그걸 표현하는 거야. 청중에게 감동을 못 줄 때 그건 노래도 아냐.”

“네~ 선생님!” 선생님의 그때 그 시절 말씀을 다시 듣는 게 너무 좋다. 아.

“특히 1회며 마이너스 노래선교단. 이렇게 오래도록 무려 오십여 년을 나와서 찬양할 수 있는 것 감사해야 해. 감사가 있어야 감동이 있지. 약간 음정 틀리는 건 괜찮아. 감동이 더 중요해.”

“네~ 선생님~ “

“주의 사랑이 꽉 찼나?”

“아니요~ 철철 넘쳐요~”

하하 노랫소리와 함께 빵빵 웃음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메운다.

“쉼표 쉼표 쉼표~ ” 아주 조용하게 시작한 ‘아베 베룸 코르푸스’가 끝나갈 즈음 곡이 다 끝났는데도 선생님 지휘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쉼표 쉼표 쉼표 하신다. 그리고 반주가 다 끝나자 그때야 “숨 쉬어!” 하신다. 그때 빵! 푸하하하 연습실 전체에 웃음이 폭발한다. 순기랑 나는 궁금하다. “숨을 쉬지 말라는 뜻 같은데 왜 쉼표 쉼표 쉼표라 하실까? 쉼표는 숨 쉬는 것 아닌가?”

“성령! 시옷 발음은 아주 잘해야 해. 할렐루야도 마찬가지야. 할! 잘못하면 알렐루야가 돼.” 아, 선생님의 말씀은 그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귀하다. ‘나 비록 연약하여도 나 주를 따라 살아가리 나 무릎 꿇고 기도하리’ 화려하게 이어지는 멜로디. 그냥 그 속에서 하나가 되어 찬양하며 여고생이 된다. 작게! 가사! 간간이 들려오는 선생님 지적. “간식 시작한다!” 하하 선생님 특유의 억양. 선생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셔도 우린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마냥 좋기만 한 거다.

하하 푸하하하 웃음이 넘쳐나는 우리 예쁜 후배님들. 그 명랑함이 너무 좋아 “잠깐 후배님들~ 촬영~” 하니 “네~ 선배님” 하면서 더욱 밝게 포즈를 취해준다. 한 마음으로 노래를 하고 나니 선배 후배 모두 하나 되는 이 느낌이라니 하하 너무 좋다. “후배님들 잘 지내고 다음 주에 봐요~” “네~ 선배님~” 주고받는 인사가 우렁차다. 하하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 올 양숙이와 성애 빼고 전원 출석인 우리 6회. “열두명 중 열 명 참석이에요. 두 명은 미국에서 오고 있어요~ “큰 소리로 선생님께 답할 우리의 확실한 출석률! 하하 선생님께 당당하다.

아, 몸은 피곤하지만 반짝 반짝 벅차게 살아나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열차 타고 리무진 타고 집에 도착하니 거의 새벽 한 시가 다 되었다. “정말 대단해. 대충 빠지면서 하지!” 남편이 이해를 못한다. 매주 울산에서 서울이라니! 그러나 천만에 만만에 콩콩 떡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귀한 순간을 난 단 하나도 놓칠 수 없다. “도리어 힘이 팡팡 솟아나는 그런 연습시간인걸!”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씩씩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네 번째 연습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