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3일 화요일 첫번째 연습>

’50주년 행사합니다’

9월 3일, 17일, 24일, 10월 1일, 8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연습시간이 확정되며 무대 설 사람 신청을 받는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울산에 사는 내가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여고시절 단짝도 여기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타고 온다. 아, 이건 정말 대단한 행사 아닌가. 45년 전 학창 시절로 돌아가 그때 그 선생님께 지도를 받으며 다시 합창을 하는 엄청난 사건. 그래! 무슨 소리야. 만사 제치고 가는 거야! 우리 기 제 일착으로 참석!!! 외쳐버린다. 그리고 오늘 그 첫 연습일인 것이다. 아, 두근두근 드디어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한창 젊은 시절에 정신 노래선교단 40명을 이끌고 노래 훈련과 신앙 훈련을 확실하게 시켜주시던 우리들의 지휘자 최훈차 선생님. 전교생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셨던 선생님. 감색 쟈켓에 회색 바지로 바쁘게 뛰어다니시던 그 매력 만점의 음악 선생님께서 어느새 80이시란다. 마음은 여고시절 그대로인데 휙휙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 선생님도 우리도 변화시켰다. 그러나 겉이야 무슨 상관이람. 마음이 여고시절 그대로인 걸. 여고시절 이후 한 번도 뵌 적 없는 나로서는 30대 초반 선생님을 80대의 모습으로 뵙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쿵쿵 쿵쿵 가슴 뛰는 일이다. 과연 선생님은 할아버지가 되셨을까? 아, 우리들 마음을 사로잡았던 선생님 정말 늙으셨을까? 두근두근 쿵쿵 쿵쿵

울산에 있는 내가 매주 5번이나 연속으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니 행사는 10월 15일이니 6번 연속이다. 그러나 앞뒤 좌우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참석!!! 그때 바로 그 선생님께서 지휘를 하시는데 무슨 갈등이 필요하랴. 무조건이다 하하. 미국에서도 오는데 그까짓 울산에서 못 올까! 암 아무렴. 이런 감동의 순간은 꼭 직접 느껴야지. 암. 하하 그렇게 열차를 타고 먼 길을 달려 정신여고를 찾으니 커다란 숲이 나온다. 기분 좋은 숲 속 길을 걸어 앞으로 나가니 드디어 정신여고 빨간 벽돌이 보인다. 연지동 우리가 다니던 학교와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그래도 정겨운 교문은 그 비슷함을 간직하고 있다. 곳곳에 붙어있는 ‘노래선교단 연습장소’ 팻말을 따라 김마리아 회관으로 들어선다. 두근두근 쿵쿵 쾅쾅

이제 이 지하 강당으로 내려만 가면 선생님이 계시다. 그리고 선배 후배들이 가득할 것이다. 이미 6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반갑게들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인다. 쿵쿵 쿵쿵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을 안고 내려가니 예쁜 후배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기수와 이름과 날짜가 적혀있는 목록을 준다. 내 이름 옆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란다. 하하 철저한 출석체크다. 그럼 그렇지. 최훈차 선생님께서 허술하게 하실 리 없지. 당당하게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악보를 받아 든다. 아, 이제 강당 안으로 들어가면 그러면 선생님이 계실 것이다. 쿵쿵 쿵쿵 두근두근

아, 선생님! 옛날 그 청춘의 모습이 아니다. 선생님 나이가 드셨다. 아. 세월은 어쩔 수가 없구나. 세상에 80이라니. 오는 대로 우선 선생님께 다가가 “선생님 몇 회 누구예요~ ” “선생님 솔로 하던 저 기억하세요?” 이런저런 추억의 말을 쏟아부으며 선생님 기억 속 자신을 끄집어내려 애쓴다. 나는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알토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나를 선생님은 절대 기억 못 하실 게다. 그래서 남들 인사하는 것만 그냥 바라보며 앉아 있다.

아, 추억의 선생님. 이리 저리 모여들며 선배 후배 동기 오랜만에 만나 “어마나 도대체 얼마 만이야.” 껴안고 웃고 놀라 소리치는 그 시끌벅적한 광경을 그저 바라보신다.

“이렇게 앉아선 안돼. 합창을 하려면 모여야지.” 가운데로 몰아 앉게 하시더니 소프라노 메조 알토 일일이 손 들게 해 나누신다. “알토 나뉘는 곡이 있어. 좀 더 밑에까지 낼 수 있는 사람은 알토 투 해. 알토 투가 많아야 해. 더 더 손들어봐.” 아, 선생님의 시작은 그때 여고시절 그대 로시다. 그렇게 일일이 손을 들게 해 적당한 숫자로 파트를 나누시더니 다짜고짜 “인사들 해.” 하신다. 그래서 빵! 웃음보 터진 우리들 하하 푸하하하 막 웃으며 안녕 안녕 옆의 선배 후배와 막 인사를 나눈다. 하하 시끌벅적하는 중에 준비위원장이신 제4회 박란순 선배님께서 앞으로 나와 기수별 소개를 함으로 체계적인 첫 만남의 인사가 시작된다.

선배님이 기수를 호명하면 파트별로 각 흩어진 동기들이 이쪽저쪽에서 일어 나 인사하는 식이다. 제일 먼저 마이너스 2기가 호명되는데 선생님께서는 “처음 합창단을 만들었을 때지. 그때 내가 총각시절인데…” 하시며 일부러 지휘자석에서 내려 마이너스 2기 앞으로 다가가 감회에 젖으시니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가슴 뭉클하다. 내 뒤의 선배님께서 “최훈차 선생님 그때 정말 인기 짱! 이셨다. 대단했어.” 하시며 엄지 손가락으로 최고! 를 만드신다. 노래선교단이라 명명하기 이전을 마이너스라 부르며 마이너스 2기부터 16기까지 우리는 지금 모여 있다. 그 옛날 여고시절 바로 그 선생님 지휘로 다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너무 좋아 모두들 어쩔 줄 모른다. 17기부터 50기 까지는 박영주 지휘자가 맡아 따로 연습한다.

자, 이제 본격적 노래 연습이다. 선생님께서 체조! 하니 후배가 앞으로 나와 체조를 인도한다. 아하 요즘은 노래하기 전 몸풀기 체조로 시작하는 가 보다. 골프도 아니고 노래하는데도 준비운동이? 하하 새롭지만 어쨌든 후배의 몸동작 따라 엇둘 엇둘 열심히 준비운동을 한다. 그러고 나서 발성연습. 위로 아래로 우로 했다 이로 했다 아, 여고시절 신관 꼭대기 합창실에서 하던 그대로다. 그리고 그대로 악보로 돌입. 첫 악보 읽기인데 아무 파트 연습 그런 거 없이 무조건 노래가 시작된다. “음, 노래선교단 출신이라 역시 악보를 잘 보는 군.” 하시더니 소프라노 메조 알토 파트를 한 번씩 연습시켜주시고 다시 전곡. 복잡한 악보 보랴 선생님 지휘 보랴 난 정신이 없다. 그래도 아, 이 얼마나 좋은가. 비록 알토 투 조그만 부분이지만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이런 노래 속에 한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다.

“선생님~ 거기 박자 이상해요.” 한창 노래하던 중 소프라노에서 이의 제기가 있는데도 선생님께서는 그냥 앞으로만 가신다. 그런데 무언가 자꾸 맞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진행하시던 선생님. “아, 이거 아니네. 아, 실수. 내가 틀렸다.” 하시며 정정. 계속 이상하다고 주장한 소프라노 앞으로 일부러 내려가셔서 눈이 1.0으로 정말 좋았는데 어느 순간 팍 나빠져 악보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매우 미안해하신다. “아니 그런데 반주자는 모했어? 왜 말 안 해?” 갑자기 고개를 훽 피아노로 돌리시며 박자가 틀려도 그냥 진행 중이던 반주자를 타박하신다. 여유만만 우리 반주자 5회 김순배 선배 “때가 되면 아실 거니까요.” 하하 능청스레 웃으며 선생님께 답해 모두들 빵! 웃음보가 터진다. 하하 푸하하하.

아, 모든 게 옛날 우리 노래선교단 시절과 너무 같다. 지금 내가 60대인지 여고생인지를 분간할 수 없다. 그냥 나는 그때 그 시절 여고생이 되어 노래하고 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말고 악보대로 해야지~” 선생님 입에서 툭툭 나오는 멘트는 여전히 재미있다. 하하 푸하하하 우리는 선생님 말씀에 웃음을 터뜨리고 “네~ 선생님” 바짝 긴장하며 악보에 집중한다.

빽빽한 악보에서 나의 파트를 찾아 열심히 선생님 지휘 보며 노래 부른다. 집중 집중 사력을 다해 악보 속 음을 제대로 내려 노력하다 보면 선생님의 여전히 살아있는 유모어에 깔깔 푸하하하 강당이 떠나갈 듯 웃음보가 터지기도 한다. 어느새 1시간이 후딱 지나가 오홋 우리의 간식시간. 노래선교단 시절도 중요했던 바로바로 그 간식시간이 된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니~’ 그때 부르던 식사 노래를 파트를 넣어 멋지게 부르고 15분간 간식시간이 주어진다. “15분이야. 7시 15분까지 이리로 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여고 때처럼 지시하신다.

간식은 일단 강당을 나가 식당에서다. 오늘의 간식을 제공해 주신 분은 제3회 박정숙 선배님이시다. 식당으로 가기 전 모두들 선생님과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우리 6회도 곁에서 기다린다. 후배도 선배님도 선생님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계속 “간식시간이야. 빨리들 간식 먹고 와서 연습해야지. 어서어서.” 하하 빨리 간식 먹으러 가지 않는 우리가 영 못마땅한 눈치시다. 그래도 우리 “넵! 빨리 찍고 가서 먹을게요.” 하며 겨우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후다다닥 식당으로 직행. 하하 15분까지는 다시 이리 와야만 한다.

“빨리 간식들 하고 와. 15분이야.” 그래도 이어지는 사진 찍기에 선생님의 표정은 점점 굳어진다.

빨리빨리~ 후다닥 식당으로 가니 이미 테이블에 가득가득 각 기 별로 앉아 수다가 만발이다.

입구에서 빵과 주스를 나누어주고 있는 예쁜 후배들에게 촬영~ 하니 방긋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인원수 점검에 들어가신 선생님께서는 각 기별로 일어나 몇 명 지원했는데 오늘 몇 명 참석했는가를 일일이 답하게 하신다. “9명인데 5명 왔고 4명은 금방 미국에서 옵니다.” “두 명신 청했는데 두 명 참석입니다.” “13명인데 12명 왔습니다.” 결석자에게는 모두 사정이 있다. “다음 연습 땐 무조건 전원 참석입니다. 제가 책임집니다.” 크게 발언하는 선배님께 박수가 쏟아진다.

“네~ 선생님” 어느새 여고시절로 돌아가 있는 우리는 선생님 말씀에 목청도 크게 “네~ 선생님” 대답하며 즐겁다. 80이라는 선생님은 어디로 가고 우리에겐 여고시절 최훈차 선생님만이 남아있다. “알토 다시!” “아냐 아냐. 시작이 그렇게 되면 안 돼. 호흡을 같이 해야 해. 지휘자를 봐.” “네~ 선생님” 즉시 목청껏 강당이 떠나가라 대답한 우리는 일제히 선생님을 바라보며 호흡을 맞춰 부드럽게 일사불란하게 시작한다.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아, 합창에 관한 한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으시다. 아, 난 지금 45년 전 여고생이 되어 있다.

“이러면 안 돼. 120명이라고 해서 대곡을 준비했는데 오늘 몇 명? 칠십여 명으론 이 곡 안돼.” 선생님께서 곡을 잘못 골랐다며 걱정하신다. “선생님, 다음엔 모두 다 올 거예요. 미국에서 오느라 그래요.” 우리는 오겠다 한 사람은 모두 올 거라며 선생님을 안심시킨다. 그 옛날에도 연습에 완벽을 기하시던 우리의 선생님. 미국의 선후배는 이미 악보를 받아 열심히 연습 중이다. 나의 단짝 친구는 두 번째 연습부터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비행기를 탄다.

2019년 10월 15일 노래선교단 창단 50주년 기념행사가 이렇게 준비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최훈차 선생님을 비롯하여 최성이 정신여고 교장과 10회 박혜성 중학교 교장 4회 박란순 5회 유미라 11회 이 효숙 정신 콰이어 회장이 준비위원으로 정신여고 교장실에 모여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매달 한 두 번씩 모여 준비한 결과이다. 50년 사를 맡은 7회 유은숙, 10회 이정림, 13회 최혜욱, 15회 최윤정, 22회 김라경이 준비위원에 추가되며 박차를 가한다. 이들은 노래선교단 창단 2년 전 합창단 즉 마이너스 2기부터 지금 고3인 50회까지 연락처와 참석자 명단을 취합하며 행사를 위한 절차를 착착 진행해오고 있다.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오후 세시부터 정신여고에서 시작되는 행사 제1부는 감사예배와 재상봉행사, 저녁식사 후 제2부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는 지금 고2로 한창 활동 중인 51회 노래선교단의 연주로 시작해 정신 콰이어, 미주노선단중창, 17회에서 50회까지, 창단전에서 16회까지 의 연주가 이어지고 끝으로 출연자 모두가 함께 연주한다.  흰 블라우스와 검은색 바지나 긴치마가 그날의 의상이다.

‘즐거운 이 시간 다 끝났으니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비는 맘 우리 모두 함께 안녕히~’ 헤어질 때 부르는 노래인데 이 노래 끝에 나오는 ‘안녕히~’는 고개 숙이며 허리 굽혀 인사를 해야 한다. “마지막 허리 숙여 안녕히~ 할 때 허리 아파할까 봐 다른 곡으로 대체한다.” 하하 푸하하하 선생님 멘트에 우리는 또 빵!!! 하하 강당이 떠나가라 웃음보가 터진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선생님과 우리. 관절도 노후되어 허리도 무릎도 하하 푸하하하 우리는 깔깔 웃으며 허리 숙여 인사하지 않는 다른 폐회송을 부른다.